독일유학일기 :: 독일어로 말을 걸어주면 고맙다
이번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일이다. 예전에는 지나다니던 외국인들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외국인으로 살아서인지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엄청 잘 보인다. 한 외국인이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었다. 아저씨가 ‘뭐 드시게?’하고 물어본다. 옆에서 조마조마했다. 갑자기 저렇게 한국어로 말을 걸면 순간 머리가 하얘질텐데. (내가 독일에서 그렇다) 다행히도 한국어를 잘하시는 분이라 도와드릴 일은 없었고, 그 분은 무사히 수박을 사가셨다.
한국에 살 때 난 외국인을 보면 거의 항상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어로 말을 건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바탕에는 ‘이 사람은 외국인이라 한국어를 못할거야’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난 그 외국인의 잠재적 한국어 연습기회를 없애버린 것이기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한국 적응을 더 힘들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독일에서 독일인들이 나에게 말을 걸 때는 99% 독일어로 말을 건다. 영어로 말을 거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영어로 대화를 할 때도 항상 먼저 독일어가 좋니 영어가 좋니라고 물어보고 시작한다. 굉장히 사소한 부분이지만 독일 사람들이 나에게 독일어로 말을 걸어주는 것이 은근히 긍정적 자극이 된다. 독일어로 외국인에게 질문한다는 것은 ‘이 사람은 외국인이니까 독일어 못할거야’라는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독일어를 개떡같이 해도 귀를 열심히 기울여주고 내 말을 다시 확인하면서 슬쩍 수정(!)까지 해주는 사람도 꽤 많다. 외국인을 편견없이 봐주는 것.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나에겐 독일에 잘 적응하라고 응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