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첫날.
독일로 유학 간다고 간다고 했는데 진짜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정신없이 공항으로 가고, 비행기에 타는가 싶더니 베를린이었어요.
출발 당일 정신없이 아침 일찍 기상했습니다. 부모님이 서울 자취방에 와 계셨기에 다들 일어나서 샤워도 하고 짐을 챙겼습니다. 다행히도 공항 픽업 차량은 집 앞에 먼저 와있었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난생처음 외국에 살러간다니. 최장 기간으로 외국에 머물러 본 기억은 약 3주 정도입니다. 2012년에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느꼈던 3주는 생각보다 길었었죠. 그때는 여행이었지만 지금은 유학이라는 목표가 있고, 부담감 또한 생겼습니다. 나이도 그 당시보다 훨씬 많이 먹었고, 심지어 옆에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같이 갑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행운입니다. 이렇게 같이 가서 같은 목표를 향해 공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이니까요. 심지어 양쪽의 부모님이 모두 유학에 적극 찬성이라니. 거의 로또를 맞은 수준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행기 타러 가서 양쪽 부모님들이랑 인사하고 이륙하는데 뭔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베를린을 가는데 군대 가는 느낌이 드는 건지. 부모님과 떨어지는 기분도 그렇고 어디 실려가는(?) 기분도 그렇고. 전혀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겁도 났습니다. 공항에 앉아 비행기가 뜨고 착륙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행 가는 기분도 들고.... 하여튼 느낌이 괴상합니다.
핀에어를 타고 꽤 오랜 시간을 날아 도착한 헬싱키 공항. 공항이 진짜 이쁩니다. 쓰레기통도 이쁘게 만들 일인가 싶네요. 북유럽 디자인답게 나무에 영혼을 판 것처럼 여기저기 다 나무 가구에, 텍스타일도 다 나무 무늬입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크기도 정말 크고 피부는 창백합니다. 이 곳이 북방의 유럽이다!! 하고 주변 모든 것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두 명의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잠시 환승을 기다리는데 주변에서 독일어가 들려옵니다. 아직 독일어는 거의 모르다시피 하지만 한국에서 틈틈이 본 시원스쿨 덕분인지 '아 저 사람 독일어로 얘기하고 있다'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베를린입니다. 이상하게도 입국 심사가 없었습니다. 그 심사 때문에 왕복 티켓 대신 편도 티켓을 끊어왔는데 헛고생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무사 입국했으니 다행입니다. 베를린의 테겔 공항은 뭔가 딱딱한 느낌입니다. 주변의 알파벳은 영어가 아닌 이상한 조합의 독일어가 쓰여있었습니다. 테겔 공항은 큰 공항은 아니었고 좀 허름한 느낌이 강합니다. 마침 햇살이 들어와서 노랗게 주변을 밝히는 것이 베를린 생활을 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짐들을 질질 끌고 공항 밖으로 나가 우버를 잡으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버는 먹통이었습니다. 왜 저의 위치를 못잡는 걸까요...? 구글 지도는 멀쩡히 잡히는 데 왜? 결국 우버를 타지 못하고 공항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공항 택시는 담당 공항 직원이 잡아줍니다. 커다란 짐에 걸맞게 커다란 차량이 왔습니다. 차에 탑승하자 기사 아저씨가 도이치? 잉글리쉬?라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잉글리시! 했습다. 그 땐 몰랐습니다. 그분이 그날 마지막으로 영어가 통하는 분이 될 줄은요. 테겔 공항에서 집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지만 기사님은 약간 길을 헤매셨고, 택시비가 어마 무시하게 나왔습니다. 짐이 너무 많았어서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고 넘어갔습니다. 23킬로 캐리어 4개가 이렇게 사람 머리 아프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끌고다니는게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천만다행으로 숙소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Tür zu라고 적혀있습니다. 집에 들어와 찾아보니 close the door라고 합니다. 새삼 영어가 이렇게 편리한 존재였나 싶습니다. 영어 사랑해요.
드디어 대망의 독일 숙소입니다. 들어왔더니 깔끔하고 좋습니다. 침구류만 갈면 될 것 같았습니다. 짐을 대충 놓고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합니다. 도착 첫날엔 간단하게 먹는 게 최고입니다. 라면 끓여먹기로 하고 마트에 물을 사러 갔습니다. 독일 수돗물은 석회수라서 먹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생수를 사야 했습니다. 당연히 마트의 모든 상품은 전부 독일어입니다. 그냥 눈치로 때려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열어보니 사 온 것들이 미묘하게 이상합니다. 제가 아는 단어는 Wasser 물이라는 단어 하나라 일단 아무거나 집어 왔더니 탄산수입니다. 그래서 그냥 탄산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탄산은 끓이면 날아갑니다. 라면과 어머님이 주신 오이지 먹으니 인지 부조화가 옵니다. 입엔 한식이 눈엔 낯선 베를린이! 혼란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대충 짐을 추스르고 잠에 듭니다. 이제 진짜 독일 생활이 시작입니다. 낯선 천장을 보면서 훈련소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동반입대(?)로 온 나의 동반자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끝.
2019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