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se.D 2020. 10. 3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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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두 번째 날입니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네요.

시간이 잘 안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할 일이 없고 심심한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심심해서가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의 흐름에 버퍼링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 생각했던 대로 아침에 일어나니 낯선 곳입니다. 몇 초간 멍하고 나서야 이 곳이 베를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을 좀 깨기 위해 일단 씻었습니다. 베를린에는 낡은 집이 많아 화장실이 별로인 경우도 많다는데 다행히도 이 집은 멀쩡합니다. 화장실을 직접 써보니 부족한 것들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화장지도 없고 기본적인 세면도구조차 없습니다. 여행용 샤워 키트를 자그맣게 챙겨 오긴 했으나 하루 이틀 더 지나면 그것도 다 떨어질 거 같습니다. 쇼핑이 시급합니다.

 

 

구글 지도로 집 주변을 검색해서 마트를 찾았습니다. 어제 갔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제 갔던 마트 바로 옆에 다른 마트가 있어서 그곳으로 결정했습니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세계입니다. 마트라는 익숙한 공간이 이렇게 놀라울 수 있을까요? 분명 나는 영어를 할줄 알고, 적혀있는 것은 알파벳이 맞는데 하나도 알아듣고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맛보기로 보고 왔던 인터넷 강의에서 본 것 같은 몇 가지 단어만 눈에 읽힙니다.

 

 

짝궁이 어제 화장을 지우는데 립 앤 아이 리무버가 없어서 고생했다고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언어를 모르니 한국 제품이랑 외양이 비슷한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립 앤 아이, 립 앤 아이'를 되뇌면서 화장품 코너를 세 바퀴 정도 뱅뱅 돌았습니다. 마트에 오기 전에 네이버로 독일 마트의 어떤 제품이 좋은지 찾아봤었고, 괜찮다는 제품을 이미지를 캡쳐해왔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블로그에서 추천해준 제품은 그 마트에는 없었습니다.

 

 

네 바퀴째 돌자 makeup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그 근처에서 결국 다른 종류의 리무버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것 하나 찾는데 20분을 써버렸습니다. makeup remover로 구글 번역을 돌렸더니 Makeup entferner라고 합니다. 앤풰어나? 구글이 없던 시절엔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외국에서 살아남았을까요.

 

 

 

이것저것 생필품을 들고 빵을 사러 동네 빵집에 갔습니다. '그래도 유럽이면 빵이지'라는 로망을 실천해보고 싶었습니다. 동네 빵집은 온갖 먹을 것으로 진열장이 가득 메워져 있습니다. 반찬류 같은 것도 보이고 올리브로 뭔가 갖가지 만든 것들, 야채들이 즐비합니다. 주인아저씨 뒤편에 거대한 빵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그나마 익숙한 모양의 빵이 보입니다. 바로 바게트입니다. 다행히도 빵집 아저씨는 짧은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바빴기에 영어를 접한 나의 기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anything else?로 대화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점심을 얼른 해 먹고 유학원인 제이클래식 본사에 가야 합니다. 따끈한 빵을 사 왔기 때문에 특별한 조리 없이 빵을 잘라서 버터를 발라먹었습니다. 원래 버터가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나 싶었습니다. 빵을 씹으면서 지하철 경로를 검색합니다. 유학원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지하철을 20분 정도 타고, 10분을 걸으면 유학원에 도착입니다. 서둘러서 식사를 마무리하고 유학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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