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과 버틴다는 것
어떤 장소에 '산다'고 인식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20살 때 서울에 처음 도착해서 모든 풍경이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매일 재수학원과 숙소만을 오가며 살았는데, 당시에는 내가 서울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수 생활을 버틴다고 생각했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었다. 다시 한번 주변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군대를 갔을 때였다. 그 때도 내가 군대 안에서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버틴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독일에 있는데 사는 것이 아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지 곰곰히 과거를 생각해봤다. 내가 서울에서 산다고 느낀건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길고 긴 재수 삼수동안에는 집과 학원외에는 익숙한 곳이 없었다. 그 생활을 끝내고 대학에 가고 나서야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 자주 가는 밥집, 자주 가는 장소를 차츰 늘려갔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 라고 느끼게 되었던것 같다. 독일에도 와서 코로나가 터진 탓에 거의 집에만 있었고, 조금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어학 공부의 압박 탓에 정말 짧은 산책말고는 놀러다니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거의 2년을 독일에 있었는데 내가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특히 할레에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홀짝인 기억조차 없는 걸 보면 정말 집밖에서 뭘 한적이 거의 없는게 확실하다. 이제 학교를 다니기 전 2주정도의 기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스스로 '버티는' 생활이 아닌 '사는' 생활로 바꿔나가볼까 한다. 아직 낯선 이곳에서 내게 익숙한 곳들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그 곳에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어느덧 이 곳에서 살게 될거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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